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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23:15 살기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독도와 釣魚島

 [프레시안 김기협 역사학자]

 
독도와 釣魚島

일본은 섬나라라서 국경 분쟁을 가질 곳이 별로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나 극우파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제기한 국경 문제는 세 방향이다. 북쪽으로 러시아와 사이에 북방 4도, 서쪽으로 우리나라와 사이에 독도 그리고 남쪽으로 타이완(및 중국)과 사이에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다.

북방 4도 문제는 우리가 봐도 공감이 간다. 1855년의 첫 러-일 조약 이래 양국 간의 국경은 상황에 따라 쿠릴 열도와 사할린을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했다. 홋카이도 바로 바깥의 북방 4도는 늘 일본령이던 것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때 소련이 빼앗아갔다. 아직까지 러시아계 정착 인구도 별로 없으니 근래 일본으로의 반환이 진척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독도와 댜오위다오 문제는 전연 다르다. 독도야 우리가 잘 아는 일이지만 댜오위다오는 어떠한가. 댜오위다오는 타이완 해안에서 130킬로미터, 중국 본토 해안에서 250킬로미터, 오키나와의 중심지 나하에서는 500킬로미터, 규슈 해안에서는 1000킬로미터 가량의 거리에 있다. 위치로 보아 중국이나 타이완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원래 오키나와는 유구(琉球)라는 이름의 독립국으로서 수백 년 동안 중국과 일본 양쪽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이것을 메이지(明治) 시대에 일본이 정복해(1877년) 병탄한 것이다. 얼마 후 청일 전쟁의 결과로 타이완이 일본에 할양됐으니(1895년) 타이완과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댜오위다오는 따질 겨를도 없이 일본 지배에 들어갔다. 후에 일본은 이 섬을 제멋대로 오키나와 현에 소속시켰다.

중국은 타이완과 적대하는 상황이고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도 궁극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타이완을 도와주고 있다. 언제든 타이완을 되찾을 때 어차피 묻어 들어올 것이니 느긋하게 타이완에게 맡겨둔다는 속셈인지 모른다.

일본 눈치를 살피느라 독도의 선착장 준공식도 제대로 못하고 장관에게 옐로카드나 띄우는 우리 정부가 딱하다. 독도와 댜오위다오는 같은 문제다. 우리 정부가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만-중국 측을 거들고 독도 문제에 그쪽 도움 받을 생각을 왜 않는지 알 수 없다.

1994년 판 대한민국 수로국 발행 해도에 댜오위다오가 'Sento Shosho'로 표시돼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중국에서 찍는 지도에 독도를 '竹島'라 표시한들 무슨 낯으로 항의할 것인가. (1997년 11월)

ⓒearth.google.com

터키의 서해안은 에게 해에 면해 있다. 그런데 바로 연안에 붙어 있는 섬들까지, 섬이란 섬은 모두 그리스 땅이다.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진도, 완도, 거금도 같은 섬들이 모두 중국 땅인 격이랄까? 터키 제국이 수백 년간 다스리던 섬들을 20세기 들어 빼앗긴 결과다. 본토는 잘라내기 힘들어도 섬들은 있는 대로 탈탈 털어갔다.

전쟁에 이기면 영토를 빼앗고 지면 빼앗기는 것이 고래의 관습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이 관습이 계속되었다. 독일은 폴란드 방면의 엄청난 영토를 빼앗겼고, 이탈리아도 아드리아 해의 섬들을 비롯해 유고슬라비아 방면의 상당한 영토를 내놓았다. 심지어 루마니아조차 베사라비아를 소련에게 빼앗겼다.

그런데 전쟁 책임이 독일 다음으로 큰 일본만은 영토에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침략했던 땅을 뱉어놓은 외에는 러시아에게 북방에서 밀린 정도뿐이었다. 섬나라이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런 이유만이 아니다. 오키나와는 수백 년간 독립국이던 유구를 불과 70년 전에 병탄한 것인데, 그조차 결국 일본 땅으로 남았다.

문제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의 성격에 있었다. 다른 패전국의 배상과 영토조정은 1946~1947년간의 조약으로 처리되었다. 연합국 사이의 합의를 통한 처리 방침이었다. 미국, 소련, 영국, 3국의 합의가 기본이었고 중국과 프랑스도 더러 발언권을 가졌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은 미국의 독무대였다. 소련과 중국은 완전히 빠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극히 소극적인 입장에 머물렀다.

미국은 1951년 당시에 일본을 아시아 방면의 가장 중요한 보루로 확보할 방침이었다. 이미 천황제 존속 등의 조치를 통해 일본을 편으로 삼을 뜻을 확실히 하고 있던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와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아시아 방면이 불안해진 만큼 더욱더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은 미국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자리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등 일본의 침략 피해가 큰 나라들의 반발을 미국이 다른 보상을 통해 대신 무마해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장 피해가 큰 두 나라의 불만은 묵살해 버렸다. 중국(과 북한)은 미국과 전쟁 중이었고, 한국은 미국에게 꼼짝 못하니까.

패전 전 군국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을 이어받은 극우파가 전후 일본에서 세력을 지킨 중요한 이유 하나는 미국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면제해 준 데 있다. 독일과 독일인에게 처참한 파국을 가져온 나치는 독일에서 고개를 들 여지가 없지만,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꿀릴 데가 없다. 그들이 한국인에게만 근대화시켜 준 공치사를 하겠는가? 침략과 전쟁을 통해 일본인의 능력과 근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전후의 경제 번영도 가능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에 승전국으로 참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한 국가"로 간주되어 참여를 거부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아무 역할도 없었던 나라라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힘을 지켜주고 그 환심을 사기 위해 희생시킨 것이 한국과 중국의 이익이었고, 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독도와 댜우위다오다. 댜우위다오의 경우 타이완이 1971년 유엔에서 축출되고 미국이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할 때까지는 중국도 타이완도 문제를 제기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반면 독도 문제를 지금까지 깨끗이 해결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형편없는 외교력과 함께 미국에 대한 심한 종속성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 극우파의 주장에는 두 개 측면이 있다. 역사적 배경과 국제법적 관계다. 1970년대까지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주장이 많았는데, 1980년대 들어 한국 학계의 조사 능력도 발전하고 일본의 양심적 학자들도 그 무리한 점을 지적하면서 잦아들었다. 시마네 현의 향토사 차원에서 지역 여론을 선동하는 데나 쓰일 정도이지, 대외적인 설득력이 별로 없게 되었다.

국제법적 관계의 근거로 일본 극우파가 내놓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이다. 그들은 일본의 전쟁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다. 편을 잘못 골랐다고 '후회'할 뿐이다. 패전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편을 바꿀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미국이 중국이나 한국보다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타났다고 믿는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에는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초청받지 못했다.

정두언 의원이 누군가를 겨냥한 "개나 소나 독도"란 말로 주목을 끌었는데, 사실 정치인들 중에 독도의 의미를 쥐뿔도 모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풍조가 분명히 있다. 비슷한 풍조가 1951년에도 있었고, 그로 인해 일본 극우파에게 꼬투리를 남기기도 했다.

미국이 준비한 대일 강화 조약 문안 중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제2조 a항)는 내용이 있었다. 주미 대사 양유찬이 이끌었던 한국 대표단은 여기에 쓰시마(대마도)까지 보탤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독도와 파랑도를 넣을 것을 다시 요구했다가 또 거절당했다.

미국이 한국의 두 번째 요구를 거절한 것은 두 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요구를 제출했던 일등서기관 한표욱은 위치의 질문에 "일본해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적으로 울릉도 인근에 위치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Mr Han stated that these were two small islands lying in the Sea of Japan, be helieved in the general vicinity of Ullungdo.)

독도의 위치는 '리앙쿠르 바위' 또는 '다케시마'란 이름만 댔으면 바로 확인됐을 것이다. 그런데 전설의 섬 파랑도와 함께 "그 근처 어디 있을 겁니다" 요구하는 쪽에서 이처럼 무성의하게 대답하는데 요구받는 쪽에서 알뜰히 찾아줄 리가 없다. 독도 표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은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정병준은 <독도 1947>(돌베개 펴냄)에서 이런 경위를 밝힌 다음 762~763쪽에 이런 논평을 붙였다.

한국 정부가 최초로 독도를 거론한 제2차 답신서(1951년 7월 19일)에는 독도의 명칭만이 거론되었을 뿐 독도-파랑도에 대한 어떠한 근거-관련 자료도 제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조약 초안에 거론된, 일본이 방기할 도서인 제주도-거문도-울릉도 뒤에 단지 독도-파랑도를 첨부했을 뿐이다. 추가적인 설명은 전무했다. 또한 위치와 존재가 확인되지 않던 파랑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주장됨으로써 독도 자체의 실존감이나 신뢰도를 저감시켰다.

나아가 한미 협의의 맥락에서 보자면 대마도 반환 요청이 기각된 다음에 독도 반환을 주장했고, 그것도 가공의 섬인 파랑도와 함께 요청함으로써, 독도가 한국 측 영유권의 중요성에서 후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한미 협의(1951년 7월 19일) 시점에 한표욱 1등서기관은 독도와 파랑도가 "대체적으로 울릉도 인근에 위치"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지리적-역사적-문헌적 정보가 부정확하고 미비했음을 드러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정치적 주장이었던 대마도 반환 요청이 기각된 이후 영토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파랑도를 주장한 데서 드러나듯이 정부 스스로 명확한 확증근거를 갖지 못한 지역을 한번 주장해보자는 정도의 결의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토인 독도의 불가침성에 대한 진지한 대응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하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나부터 그렇다. 그런 일본인을 이 글에서도 자꾸 '극우파'로 표기하게 된다. 그러나 극우파 아닌 일본인도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일부 근거만 보면 독도가 일본 땅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1951년 7월 한미 간의 협의 내용도 그런 근거의 하나다.

그런 근거만이 일본에서 횡행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문제고, 또 한국에서 일체 무시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다. 각자 주장하고 싶은 방향에 불리한 증거와 유리한 증거를 함께 검토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영원한 평행선을 면할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미워하기만 하기보다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욕을 하는 데도 선후를 가릴 필요가 있다. 일본 극우파야 어느 사회에나 독단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니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반일'을 팔아먹으면서 독도에 대해서고 무엇에 대해서고 아무 진지한 생각 없이 일본 극우파의 주장 근거만 만들어준 이승만 매국정권이 정말 한심한 존재다.

김기협 역사학자 ( tyio@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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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역사학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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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hnim
2010.11.28 05:02 사이 - 철학과 삶


오랜만에 신학계에서의 도올 선생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글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도올 선생의 기독교 관련 학문작업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거의 모두다, 일방적인 비난(혹은 저주) 아니면 알맹이 없는 찬양과 격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거의 처음으로, 맹목적으로 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도하게 칭찬만 하는 것도 아닌, 진정으로 이 분야의 학자가 덤덤하게 도올 선생의 작업에 대한 장단점을 적절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http://www.veritas.kr/contents/article/sub.html?no=7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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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식]도올 김용옥의『도마복음한글역주』를 평함견자(見者) 예수를 앞세운 도마와 도올의 선문답
도올 김용옥 교수(원광대 석좌교수)가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 2권, 3권을 펴냈다. 이 책에서 김용옥 교수는 “도마복음은 4복음서의 원형” “(어떤 면에서) 예수는 니체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신론자”라는 등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으로 논란을 예고했다.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를 바라보는 한 신학자의 시각을 싣는다. 그는 이 책의 '학문적 값어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도올의 치열한 탐구정신은 기독교인들도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글의 괄호 안에 기재된 앞의 숫자는 이 책의 권수를 나타내며 뒤의 숫자는 그 책의 쪽수를 가리킨다.)

 


글·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약학)


I.

 
이 땅의 지식사회에서 도올 김용옥의 존재는 그를 둘러싼 복잡한 소문과 극명하게 엇갈리는 개인적인 호오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마력을 동반한다. 남들이 선호하는 한 사립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둔 이래 그가 보여준 행보는 격렬하리만큼 파격적이고 혼란스러웠다. 특히 기독교와의 관계에서 그가 보여준 과감한 도전과 전복적 언행은 기성 교회에 불편한 원성을 드높였던 게 사실이다. 그는 동양의 종교와 사상을 두루 섭렵하면서 일찍이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에도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연구에 힘써왔던 바, 그 열정의 산물로 빛을 본 근래 몇 권의 책들이 비록 교회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지만 기독교 지식의 대중화에 불을 붙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교회를 파괴하는 반(反)기독교 지식의 이단적 횡포라고 평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한국 지식사회의 전반적 지형에서 보면 그의 특유한 열정과 사상의 종횡을 가로지르는 모험적 결기, 나아가 그것을 대중에게 전하며 계몽주의의 전도사 노릇을 하는 유희술사로서의 역할 모두 나름의 순기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땅의 신학계를 포함한 우리 지식사회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의 균열이 심하고 배운 것과 사는 것이 겉도는 역리와 배리의 전당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신학자들의 활동반경이 상아탑의 울타리와 교단의 폐쇄적 사육 사이에서 어설프게 휘둘리다보니 그들의 지식이 이 땅에 착근하여 신학의 자생적 근기를 기르기는커녕 서양에서 배운 것조차 활달하게 써먹지 못하는 처지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이 그러한 분위기를 가중시켜온 감이 짙다. 그 소심한 신학자들의 지적인 미션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도올 김용옥은 좌충우돌 자신의 깐깐한 탐구를 전략적으로 담론화하여 유불선의 동양 경전을 거쳐 이제 기독교 경전의 역주작업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II.
 
그가 이번에 출간한 『도마복음한글역주』는 도합 3권으로 이루어진 꽤 방대한 저서이다. 여타의 다른 역주 작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는 저자의 범람하는 지적인 열정이 넘실거린다. 이 책의 저작을 위해 그는 도마기독교의 원산지인 근동의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을 장기간 여행하면서 온 몸으로 자신의 지식을 검증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 이전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동서사상의 합류와 교통의 시도로써 인류 지식의 통섭을 기획하려는 그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서구의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해온 기독교의 경전을 동양사상을 통해 재조명하려는 저자의 탐험은 마침내 도마복음이라는 문헌에 이르러 황홀경의 해석학적 진로를 개척한다. 그는 무엇보다 감탄하며 도발하는 열정적 지성이다. 일찍이 요한복음서와 Q복음서에 대한 역주를 낸 그는 이 책에서 빈번한 감탄과 감동을 토로하며 역사적 예수의 원류를 붙잡으려는 절박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저자 특유의 적나라한 구어체 문장을 곳곳에 뒤섞어 제조해낸 이 책은 그러한 열정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동양적 예수에 대한 그의 강렬한 신념이 투사된 결과물로 비친다.
 
도올의 관점에 의해 재구성된 도마복음의 예수는 다음의 몇 가지 간단한 논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가령, 도마복음은 영지주의 사상에 의거하여 기존의 복음서의 내용을 짜깁기한 후대의 외경문헌이 아니라 그것들 본래의 원형(그의 표현에 의하면 “오리지날 아키타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도마복음이 다양한 전승의 예수 말씀들이 수집된 결과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필사 시기나 복잡한 과정과 무관하게 “그 로기온의 전승은 최소한 큐복음서와 같은 시기의, 혹은 그보다 빠른 또 하나의 자료체계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3:56-57)는 일각의 주장에 편승한다. 심지어 Q자료조차도 초기 교회의 신학적 입장에 침윤된 데 비해 도마복음은 복음서의 드라마적 양식에 의거한 사상적 틀에 오염되지 않은 원형적 예수 운동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고 확신한다(2:332). 이에 따라 그는 도마복음을 ‘소승 기독교’의 출처로, Q복음서를 ‘대승 기독교’란 별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2:137). 이러한 전제로부터 용인되는 도마복음의 신학적 입장은 탈종말론적 지향과 지혜의 견자에 그 초점이 모아진다. 이에 따라 묵시주의적 종말론과 예수에게 부과된 온갖 기독론적 인식은 후대 교회에 의한 왜곡으로 치부된다. 그것은 고작해야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에 의한 복음서 작가들의 변형 결과였을 뿐이다(2:326).
 
이러한 해석학적 틀에 비추어볼 때 도마복음의 예수는 견자이자 곧 갈릴리의 유대인 견유학자라는 크로산의 모델로 수렴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끊임없는 탐구와 모험의 여정으로서 말씀의 해석이 중요하며, 거기서 제 실존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 진리 추구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 그 발견은 타인의 해석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개벽과 함께 자신의 해석을 발견하는 앙가주망이어야 한다(2:125). 도올이 앞세운 도마의 예수에게 천국은 시공간의 개념으로서의 천당이 아니요 곧 주체의 개벽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결국 도마복음의 예수가 보여준 구원의 길은 개인의 해탈이요 득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고독한 단독자로서 제 실존의 심연을 살펴 자기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깨치고 전관(全觀), 합일, 전복, 융합을 향해 나아가 “모든 분별이 사라진 웅혼한 원초성”(2:203)에 눈 뜨는 개안의 경험이어야 한다. 예수에게 종말의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묵시주의적 시대 분위기의 소산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는 예수가 그러한 종말론적 분위기를 창출해내었다는 것이다”(2:94). 따라서 도마복음의 종말론은 우리의 종말이라는 실존적 사태에 관여하며 그것은 개체적 사태, 곧 개체의 죽음을 의미한다(2:322). “종말이란 시간의 종료가 아니라 나의 삶의 완성”(2:328)이라는 것이다.
 
뿐 아니라 도마복음의 구원론과 관련하여 저자는 예수에 대한 일체의 신앙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예수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깨달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탈로서의 구원을 가르친 예수는 그가 구약의 하나님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니체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신론자”(3:325)로 조명된다. 물론 여기서의 무신론은 신의 존재가 인간의 구원과 무관한 상태를 염두에 두고 조율된 개념이다. 이렇듯 도마복음이 보여주는 역사 속의 원형적 예수는 당시 바리새파와 달리 헬레니즘 문명이 번성한 갈릴리의 개방된 풍토에서 자라났으며 레바논 시리아 지역의 개방된 동양적 사유에 큰 영향을 받은 사상가이다(3:329). 그가 가르친 안식은 곧 구원으로서의 자기 해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안식할 곳조차 없다고 그가 고백한 것은 “해탈을 거부하는 보살적인 대승 정신”(3:267)의 발로로 풀이되기도 한다. 도마복음의 사상적 정수를 발견하고 예수의 원형적 신학을 조명하면서 저자는 그 특유의 풍부한 동양사상적 지식을 맘껏 활용한다. 그리하여 동양적 풍모를 띤 도마의 예수는 노장과 공자의 사상에 수월하게 접속되고 고독한 초월자의 구원론에 이르러서는 숫타니파타경의 홀로 가는 ‘코뿔소’ 비유에 적절히 상응한다(3:105-106).
 
반면 도마복음에서 은밀한 말씀을 강조하는 특성은 브데레(Wrede)가 조형한 ‘메시야 비밀’ 이론의 문학적 편집과도 다르고, 밀의종교적인 비의의 속성과도 구별되는 다른 차원에서 ‘난해한 상징성’의 증거로 옹호된다(3:63). 특히, 특권적인 ‘지식’의 소유를 주장한 영지주의의 잡다한 신화론적 우주관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그는 도마복음의 영지주의적 연루 혐의를 제거해버린다. 한편 예수를 선지자와 의사로 인정하면서도(3:56) 그는 예수가 행한 기적을 초자연적인 ‘마술’이 아니라 “상식에 쩔어버린 역사를 변혁시키는 힘”의 상징적 표현으로 자리매김한다(3:58). 이와 같은 독법을 통해 도올의 도마복음 주해가 의도하는 실천적 메시지인즉 오늘날 신화화되고 교조적인 이 땅의 기독교가 해체되고 보다 자유롭고 포용적인 자기 수행의 기독교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인 듯싶다. 마치 “인도불교가 선불교로 변형되었듯이 서구기독교가 동방의 선기독교로 변형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을 “하나의 역사적 필연”(3:383)으로 보려는 시각도 마찬가지의 기대를 대변한다.

III.
 
이 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여러 방면에서 제기될 수 있다. 먼저 도올이 자신의 신념에 강하게 함몰한 나머지 도마복음에 대한 전문학계의 논의를 편취하여 그것이 보편적 대세인 양 선전하는 방식에 드러난 왜곡된 과잉 열정과 그로 인한 파행의 흐름을 비판할 수 있다. 특히 도마복음이 공관복음서의 본래적 원형이라는 주장이 가장 권위 있는 전문학자들 사이의 대세라는 투의 논조는 사실의 은폐와 왜곡을 조장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그는 “많은 주석가들이 공관복음서의 다양한 자료들을 놓고 도마가 간추려 구성한 것이라는 식으로 억지춘향의 논리를 편다”고 주장하면서 “세계 성서주석학의 수준이 어떤 이념적 편견에 묶이어 있”(3:62)는 현실에 개탄한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말하는 “억지춘향의 논리”와 “이념적 편견”의 실상이 그러한 일방적 재단 이면에 어떤 다양한 지형으로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기성 서구학계에서 다각도로 진행되어온 도마복음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도마복음이 부분적으로 히브리인의 복음서와 이집트인의 복음서 등과 같은 비정경복음서에서 파생된 어록의 수집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교부 알렉산드리아 출신 클레멘트의 관련 증언과 도마복음 내의 쌍둥이 어록의 존재가 그 대표적 증거로 거론된다. 둘째는 도마복음과 정경복음서의 전승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특히 그 어법과 배열 순서를 기준으로 양자를 의존적 관계 또는 독립적 관계로 보려는 관점이 존재한다. 그 기준에 따르면 양자 간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도마복음이 공관복음에 의존한 편집물이라는 입장에서는 그 유사점을 강조하고 독립된 저작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셋째는 도마복음과 정경복음 모두 그 이전의 공통된 자료에 의거하여 나름대로 문학적 창작을 했다는 입장이 있다. 전통적 자료들이 그 과정에서 호출되어 재활용되고 간텍스트적으로 재가공되면서 각기의 편집적 전승의 경로를 밟아갔으리라는 추론이다. 비록 도마복음이 정경복음에 의존하여 작성되었으리라는 주장이 다수 학자들의 지지를 받는 편이지만 이 논점은 아직 미해결의 난제로 남아 있다.
 
도마복음의 산출 연대의 비정 역시 Q문서와 같은 예수의 어록이 편찬되기 시작한 1세기 중반에서 파피루스 옥시린쿠스의 사본과 히폴리투스에 의한 언급을 증거로 2세기 중반까지 다양하게 산포된다. 영지주의의 산물로 보는 일부 관점에서는 이 자료를 훨씬 후대로 내려 잡아 3세기의 편집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주장들은 텍스트 안팎의 매우 빈약한 증거에 기댄 추론 이상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도올의 강변대로 “억지춘향의 논리”나 “이념적 편견”의 산물이 아니라 워낙 부족한 증거를 가지고 최선의 분석과 개연적 추리를 통해 산출한 나름의 학문적 결론인 것이다. 더구나 도마복음이 Q자료와 동시대이거나 더 선행하며 역사적 예수의 본래적 원형을 담아내고 있다는 주장은 도올의 주장대로 학계의 대세가 아니며 그가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크로산을 비롯한 예수 세미나 팀의 일부 주장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옹호하는 세력을 추켜세워 “미국 주요 신학자들을 총망라한 지저스 세미나 운동”(3:191)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북미 성서학계의 지극히 적은 일부 신약성서학자들 및 고대기독교문헌학자들(‘신학자들’이 아니라)로 구성된 소수의 학자군일 뿐이다. 그들이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매스컴의 적절한 활용과 꽤 선정적인 언론 플레이에 빚진바 적지 않고, 국내 독자들에게도 주로 이런 쪽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소개된 영향도 크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으로 재조명한 비묵시와 탈종말론의 예수와 현자 예수의 역사적 진정성 운운은 기실 19세기 이래 니체가 암시하였고 예수전 집필 붐과 함께 도래한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 상을 재탕하면서 기존의 궤적을 큰 틀에서 선회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들 내부 진영에도 다양한 편차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그들의 예수를 “캘리포니아 버전”의 예수, 북미중산층 백인 지식인들에 의한, 그들의 취향에 부응한 예수라고 폄하하는 분위기다. 그들의 예수가 외려 이 시대에 낯선 부분을 도려낸 결과 이념적인 편향에 치우친 억지춘향의 산물이라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로 현재 북미에서조차 퇴조하고 있다(예컨대, 현재 북미 성서학계의 대표기관인 SBL 모임에서도 이들이 주도해온 ‘역사적 예수’ 분과 자체가 개설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도올이 이 책에서 역사적 예수의 사회 참여적 성격과 실존주의적 수행자의 모습을 동시에 부각시키는 데서 탐지되는 균열을 지적할 수 있겠다. 전자는 공관복음의 예수 상을 부인하지 못하는 데 터한 관점이고, 후자는 도마복음과 Q자료의 견자 예수를 부각시키는 데서 도출되는 관점이다. 그렇다면 도마복음의 예수가 추구한 ‘강렬한’ 사회참여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이 당대의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걸치고 있는지 분명히 밝혀야 했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해법은 예수의 행적을 둘러싼 구체적인 역사적 관계망과 그 실천적 내용이 아니라 앙가주망과 탈앙가주망의 역설적 혼재이다. 이를테면,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관심과 사회적 무관심은 궁극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가치”(3:78-9)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파행은 역사적 예수를 ‘역사’ 속에 위치시켜 그 구체적인 육체성을 부각시키면서 도마복음의 선문답적 어록에 비친 탈역사적인 예수로의 증발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듯하다.  
 
뿐 아니라 도올의 논법이 지닌 의도적 파격성과 그 대중적 어필의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진술은 과도한 자의식의 도취로 인해 더러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사실의 왜곡과 황당한 허세를 동반하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성취를 얼룩지게 하는 결함이다. 가령, “로마총독 빌라도의 재판 운운하는 거창한 장면들은 모두 마가의 드라마 구성에서 연유된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이 “현재 성서학자들의 대세”(2:100)라거나 “도마복음의 단독자 전통이 기나긴 수행승의 전승을 거쳐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주의적 단독자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2:311)이라는 주장은 직관적 판단을 넘어 과도한 비약일 뿐이다. 나아가 “고린도전서 2:9에서 본문의 인용구가 이사야 64:3의 의미맥락과 다르기 때문에 도마복음에 기초하고 있다”는 로빈슨(M. Robinson)의 단견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2:315)이나 “중동세계의 종말론은 거개가 모두 조로아스터교에 근원하고 있다”(2:327)는 무모한 일반화 등은 동서고전을 섭렵하는 저자의 방대한 탐구 의욕이 섬세한 학문적 검증의 결여라는 패착으로 드러난 사례이다. 이러한 과잉 자의식은 한 술 더 떠 “나 도올을 모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 도올이 말하는 말씀에 내재하는 성령, 그 진실을 모독할 수는 없다”(3:118)는 식의 치기어린 독백으로 추락하기도 하는데, 이는 도마복음의 예수에 반향하는 결기 어린 선문답이라고 보기엔 너무 비성찰적인 진술이 아닌가 싶다.
 
나는 도마복음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예수 전승의 또 다른 궤적이 담겨 있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기독교란 종교를 떠나 인류 문명의 소중한 유산이고 이를 매개로 놓고 볼 때 “헬레니즘 문명권 속의 인도적 사유와 팔레스타인적 사유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확인”(3:108)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비록 콥트어 원문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이해가 담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역주에 담긴 섭동적 도전 정신도 높게 평가한다. 전반적인 해석학적 틀과 세세한 주석의 내용과 관련하여 나로서는 이견이 깊지만 도마복음의 사상세계에서 “자각적 해탈론”(3:85)과 “선적 회향”(3:86)의 요소를 포착한 점도 사상적 교통 공간의 원활한 소통이란 견지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한 여지가 있다. 물론 도마복음이나 예수 어록의 요체를 가짜 ‘나’의 모습을 떨치고 참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구도적 탐구로 보는 기본 패턴은 도올 이전에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으로 소급되고, 근래에는 역시 도마복음을 묵상적으로 풀어놓은 오강남 교수, 역시 도마복음과 Q자료 등의 문헌을 토대로 동양적 예수의 상(像)을 구상해온 김명수 교수의 학문적 시도와도 연계된다. 그러나 도올이 이로써 동서사상의 융합과 소통을 도모하고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을 기획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특히 그의 비판적 지적대로 자폐적이고 배타적인 체제의 논리를 고수하면서 사회적 반성과 검증을 거부하는 한국교계의 인습적 관행에 비판적 메스를 가하려는 그의 예언자적 결기는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리라 본다. 따라서 기독교를 포함하여 “종교의 본질을 네가티브에서 포지티브로, 저주에서 격려로, 율법에서 사랑으로, 사망의 위협에서 생명의 환희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3:258)다는 저자의 열렬한 계몽적 웅변에도 명분상 무조건 반대하기 궁색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가 왕성하게 섭렵하고 원용하는 동양사상의 원융적 지혜와 이로써 촉발되는 계몽적 선기 역시 도마복음의 주해뿐 아니라 교조주의적 체계로서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성찰적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학문적 방식은 보다 엄격하고 공정하며 포괄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신념을 부동의 진리로 확신하고 그 확신이 부단한 동어반복의 체계 속에 되먹임되는 방식으로 그 바깥의 보다 광범위한 사실을 외면하고 그 진실을 가린 채 과잉으로 범람할 때 그것은 숱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화자찬의 설익은 학문으로 표류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IV.
 
사족으로 나는 이 책의 거친 문장들 틈새로 자리한 매우 정제된 아름다운 사진들에 매우 감동한다. 그것은 저자가 두 발로 그 거친 근동의 대지를 밟으면서 제조해낸 작품들로서 지독한 ‘치통’과 ‘탈장수술’을 무릅쓴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비친다. 비록 책의 해당 내용이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 사진들이 상당수이지만 도올의 이 치열한 탐구 정신의 진취성과 구도자적 모험의 개방성은 그를 싫어하는 기독교인들도 열과 성을 다해 배워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인류 문명의 기원과 역사의 원형을 찾아 온 몸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치열한 예수의 구경적(究竟的) 신학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뱀처럼 지혜로운 견자는 독조차 약으로 바꾸어 쓸 줄을 알지만 어리석은 자는 약까지 독으로 만들어 폐기해버리지 않는가.

 

posted by hhnim
2010.11.23 15:37 물리하기

내가 요즈음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이른바 '나이듦 현상Aging Phenomena'이다. 밑도끝도 없이 무슨 주제 이름이 이러냐고? 뭐 나 자신이 봐도 정말 밑도끝도 없는, 말만 가지고는 무슨 현상인지 전혀 짐작도 못할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듦'이라는 단어 때문에 매우 다양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먼저 현재 확립되어 있는 학문적 갈래로부터 접근해 보자. '나이듦 현상'은 '비평형 풀림역학Non-equilibrium relaxation dynamics'에서 관찰될 수 있는 매우 특징적인 현상으로서, 어떤 물리계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형 상태로 접근할 때 시간진행 불변성time-translational invariance이 깨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게 '나이듦'과 무슨 관계냐고? 시간진행 불변성이 깨진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그 물리계가 시간변수에 뻔하지 않게 non-trivially 의존한다는 것, 즉 '나이'를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차근차근 풀어보자. 먼저 평형 상태에서는 어떤 물리계에도 '나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평형 상태의 정의 자체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또는 무한대의 시간이 지난 이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수학적으로 말한다면 평형 상태의 물리계에는 시간변수 자체가 포함되지 않는다). 비평형 풀림역학이란 이러한 평형 상태를 이상적인 상태로 설정하고, 어떤 물리계가 비평형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평형 상태로 접근해 들어가는 그 과정에서의 거동을 기술하는 분야다. 그러면 비평형 상태 중 가장 간단한 사례는 무엇일까? 그것은 평형 상태로부터 '아주 조금infinitesimally small' 벗어난 비평형 상태일 것이다. 이러한 '평형 근처 풀림near-equilibrium relaxation'에서의 물리계의 특징은 그 거동이 시간진행에 불변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어떤 시간에 시작해서 어떤 시간에 끝이 나든 그 시간차만 같다면 우리는 그 물리계를 똑같은 것으로 기술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도 물리계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제 한 발 더 나아가서, 평형 먼곳 풀림relaxation far from equilibrium을 생각해 보자. 평형으로부터 매우 먼 비평형 상태이므로, 평형으로 접근하는 그 과정에서의 물리계는 직관적으로도 시간에 매우 복잡하게 의존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시간의존을 '나이듦'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놀랍게도, 평형으로부터 매우 먼 곳으로부터 풀리는 물리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물리계의 시간의존도는 단지 그 '시간비율'로 표현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것이 '나이듦 현상'의 두 번째 특징인데, 그것은 바로 동역학적 눈금잡기dynamical scaling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물리계의 관찰 시작시간이 클수록(나이가 많을수록) 그 물리계의 풀림현상은 느려진다(거동이 느려진다)! 그러나 그 관찰 시작시간과 풀림시간의 비율이 같다면 우리는 그 물리계를 동일한 것으로 기술할 수 있다.

이를 일상언어로 풀어보자(조잡하다는 비난은 감수해야겠다). 보통 '나이'라는 개념이 유의미하게 쓰이는 생물학에서, 예를 들어 한 세포는 그것이 나이가 많을수록 그것이 지니는 세포막의 탄력성이나 세포 기능이 현저히 느려지고 떨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 세포의 구성원들(예컨대 고분자 덩어리들)이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복잡하게 움직이고 만들어지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는 물리학에서의 '나이듦 현상'은 이러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없는 물리계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평형으로의 접근 과정이 느려짐을 말하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나이와 풀림 시간의 비율을 변수로 하여 물리계의 거동을 재구성하면 그 물리계는 어느 시간에서든 동일하다. 이것은 물리에서 매우 중요한 '보편성'을 의미한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전문적인 의미로 서술해 보겠다. 어쩌면 그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음 편에서 다시~~

posted by hh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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